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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권오휘 시집 <가장 멀리 간 것들> -도서출판 상상인-

2025.11.18

 




권오휘 시집 가장 멀리 간 것들

  

상상인 시인선 092 | 2025년 10월 28일 발간 | 정가 12,000원 | 128*205 | 188쪽 

ISBN 979-11-7490-021-0(03810)
도서출판 상상인 | 등록번호 572-96-00959 | 등록일자 2019년 6월 25일 
(06621)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 74길 29, 904호 
Tel. 02 747 1367, 010 7371 1871 |Fax. 02 747 1877 | E-mail. ssaangin@hanmail.net

* 이 책은 경상북도와 경북문화재단의 ‘2025년 예술작품지원사업’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시집 소개]

이 시집은 시인의 고향인 특정 장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기억의 고고학이다. 그곳은 경북 예천군 예천읍 상동리이다, ‘목구랑’이라는 냇물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명시된 이 공간은 단순한 지리적 좌표를 넘어서, 시인의 유년과 청소년기를 품었던 실존적 근거지이자 현재의 자아를 끊임없이 소환하는 기억의 헤테로토피아로 기능한다. 미셸 푸코가 말한 헤테로토피아가 현실 공간 안에 존재하면서도 현실과는 다른 질서를 가진 ‘다른 공간’을 의미한다면, 권오휘에게 상동은 물리적으로는 이미 떠나온 곳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살아 숨 쉬며 현재의 삶을 규정하는 그러한 공간이다.

표제작 「가장 멀리 간 것들」은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상동 철길 끝은 아득했다”로 시작되는 이 시에서 철길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상실을 상징하는 통로다. “평구 마당 너머/보이지 않는 곳으로/모든 것은 사라져 갔다”는 구절은 유년의 기억들이 시간의 지평선 너머로 소멸해 가는 과정을 시각화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가장 멀리 사라진 것들이 “뇌리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다는 고백은 기억의 본질적 속성을 드러낸다. 이처럼 상동이라는 공간은 시인에게 단순한 추억의 장소가 아니라, 현재의 자아를 끊임없이 소환하고 정체성을 확인하게 만드는 실존적 좌표인 것이다.
이 시집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흙의 상상력’이다. 권오휘 시에서 흙은 단순한 배경이나 소재를 넘어서 존재의 근원적 조건이자 생명의 모태로 기능한다. 「흙」이라는 시는 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흙은 붉고 뜨거웠다”는 첫 구절부터 흙은 단순히 밟고 서는 대상이 아니라 체온을 가진 살아있는 실체로 제시된다. 「돌멩이에 베인 기억」에서는 흙의 상상력은 물의 이미지와 결합되어 나타난다. “상동 냇물은 푸르고 차가웠다”는 시작은 물의 투명성과 차가움을 강조하지만, 곧이어 “돌멩이에 베인 상처마다/냇물은 눈물처럼 흘렀고”라는 구절에서 물은 치유의 매개이자 고통의 증언자가 된다. 흙과 물, 이 두 원초적 물질 사이에서 어린 시인은 “가장 원초적인 아픔”을 느끼며 성장한다. 
흙과 함께 이 시집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물질적 상상력은 ‘바람’이다. 「바람에 젖다」는 바람을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그리움과 만남의 매개로 승화시킨다. “바람이 지나고 난 뒤에/잔잔한 평지에 그대를 위하여/작은 그림을 그리겠습니다”라는 시작부터 바람은 시간의 흐름이자 변화의 동인이다. 시인은 “담 위로 들어오는 바람을 통해/그대를 향한 그리움을 터놓”으려 하며, 마침내 “그대가 바람 되어 오는 날 활짝 열어 놓겠습니다”라고 약속한다. 여기서 바람은 부재하는 존재와의 만남을 가능케 하는 매개이자, 그리움 자체의 형상화다. 
권오휘의 시집 『가장 멀리 간 것들』은 개인적 기억을 통해 보편적 인간 조건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상동이라는 구체적 장소는 모든 이가 가진 고향의 원형적 이미지가 되며, 부모의 상실은 누구나 겪게 될 근원적 이별의 경험이 된다. 흙과 바람, 물과 눈, 기차와 철길 같은 구체적 사물과 장소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실존적 요소들이다. 떠나온 고향은 물리적으로는 멀리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며, 잃어버린 시간들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삶을 끊임없이 소환하고 질문한다. 이 시집은 결국 기억과 망각, 부재와 현존, 떠남과 머묾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조건을 탐구하는 여정이며, 그 여정은 상동이라는 헤테로토피아적 공간을 통해 구체화된다. 가장 멀리 간 것들이 가장 가까이 있다는 이 역설 속에서, 우리는 존재의 본질과 마주하게 된다.

 

[시인의 말]

논두렁을 뛰어다니며 맡았던 흙냄새, 해 질 녘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던 연기, 들녘을 가득 채우던 바람과 빗소리는 내 모든 감각과 언어가 되었습니다.

거칠어진 손으로 나를 쓰다듬던 부모님의 손길은 내 안에 스며들어, 세상을 견디는 힘이자 시를 쓰게 하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그 어떤 위로보다 깊었던 체온이 『가장 멀리 간 것들』이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그리움의 실체와 마주했습니다. 그리움은 단순한 슬픔을 넘어, 나를 끊임없이 어루만지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이 시집의 모든 시편은 그렇게 형성된 내면의 풍경이며, 땀과 눈물로 일군 삶의 기록이자, 부모님께 물려받은 인내와 사랑을 자식들에게 다시 물려주려는 작은 유산이기도 합니다. 그리움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낸 모든 것에 대한 아련한 이름이자 오늘의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가장 소중한 순간입니다.

2025년 가을 심유산방에서

권오휘​


 

[저자 약력]

권오휘


경북 예천 출생. 국립경국대학교 국문학 박사 졸업. 󰡔예천󰡕 발행인, 한국문인협회 경북지회장, 안동대학교 겸임교수, 경북도립대학교 외래교수 등 역임. 「찾아가는 인문학콘서트」 등 기획·운영. 현, 대창중·고등학교 교장. 한국예총예술문화상, 경상북도교육감상, 예천군민상(문화예술 부문) 등 수상.

시집 『추억은 그 안에서 그립다』 『이미 지나간 것과의 작별법을 익히며』 『가장 멀리 간 것들』 , 동인 시집 『오랜만에 푸른 도회의 하늘』, 연구서 『훈민정음 제자원리와 역리의 상관성』, 『경북의 발견』, 공저 『경북북부지역 방언사전』 『예천지역의 언어문화』 등.

kwon21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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