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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상상인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 _ 왕신연

2026.01.26

▶ 2026년 상상인 신춘문예 수필부문 심사평

  

2026년 상상인신춘문예는 지난 2021년에 시작하여 올해로 6회째에 이르렀다. 첫 회부터 일대 선풍을 일으킨 응모자 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폭발적으로 늘어나, 올해에는 시와 수필 두 부문을 합하여 2.944명이라는 기록적인 결과를 보였다. 우리 문학사상 최고의 응모 인원으로 예심을 1차와 2차 두 번에 걸쳐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예심을 통과하여 본심에 오른 응모작은 시 15편, 수필 15편으로 도합 30편이었다. 본심 심사위원들은 사전에 이 작품들을 면밀히 검토한 다음 1월 21일 상상인 사무실에서 깊이 있는 토의와 함께 먼저 부문별로 후보작 3편씩을 선정했다. 이어서 이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다시 신중한 토론을 거쳐 시 1편, 수필 1편의 당선작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상상인신춘문예 심사 개요에서 밝힌 바와 같은 체계적인 과정을 통하여, 최종까지 남은 수필부문 후보작은 모두 3편이었다. 그 대상작은 「한 땀의 울력」과 「달팽이 심장」 그리고 「삼봉산」이었다. 이 작품들은 수필로서의 형식적 외양과 진중한 내면세계를 구비하고 있어, 기실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해도 별반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글의 구조적 완성도, 중심 주제, 이를 추동하는 문장력, 글이 남기는 교훈이나 재미와 같은 독자 수용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한 작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고른 작가적 역량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 소재 또한 동시대 삶의 저변을 포괄하고 있어서, 우리 수필 문학의 향상을 보여주는 형국이라 여겨져 기껍고 흔연했다. 그러나 ‘아드 폰테스Ad Fontes’란 말, ‘근원으로 돌아가라’라는 라틴어에서 보듯 수필의 원론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 측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는 수필이 크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작고 조촐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소박한 정황이 오랜 감동이 되어 독자의 가슴에 머무는 개성적인 글이어야 한다는 논리를 말한다.
 

「한 땀의 울력」은 어느 시골 마을의 공동체 노동에 관한 화자의 심경과 내면적 변화를 실감 나게 그린 작품이다. 아직 어리고 공부해야 하며 언젠가 떠날 사람이라는 핑계로 이를 회피하면서 살려고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화자는 마음이 여린 이다. 화자는 억센 칡넝쿨 줄기를 제대로 끊어내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는데, 옆집 할아버지가 아무 말 없이 도와주고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그 이후에 화자의 집 마당으로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고, 서로 ‘공동의 노력’에 대한 위로를 주고받는다. 화자는 이 과정에서 ‘오래된 약속’이자 ‘따뜻하게 이어지는 연대’의 소중함을 배운다.
 

「달팽이 심장」은 달팽이의 형상과 움직이는 관찰로부터 글을 시작한다. 그 달팽이를 움직이는 심장에 대한 것이 화자의 관심사다. 화자는 지난여름 얼갈이에 매달려 왔던 달팽이를 소환했다. 그 달팽이가 ‘고양이 알밥’을 갉아 먹으면서 자라고 커가는 모습을 발견하고 생명에의 외경을 경험한다. 이 달팽이에 우리 삶의 한 면모를 견주어 볼 수 있다면, 이는 사소한 자연현상 가운데서 삶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일이 된다.
 

위의 두 작품과 더불어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이다가 마침내 당선작이 된 「삼봉산」은, 함께 제출된 「마당숲」과 더불어 모처럼 새로운 유형의 수필을 만났다는 기쁨을 누리게 했다. 이 두 글의 지은이는 얼핏 복고적인 소재의 글감을 다루고 있으나, 그것을 형상화하는 기량에 있어서는 사물을 보는 심층적인 안목과 이를 해석하는 활달한 상상력을 두루 갖추고 있어서 당선작으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할 터였다. 「삼봉산」은 수석을 하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환기하면서, 이들의 자식인 화자가 그 수석 ‘삼봉산’을 내다 버려야 하는 심사를 섬세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 보였다. 작은 돌 하나에 이 가족의 생애사와 그 관계성의 문맥이 함께 얽혀 있는, 사뭇 볼품 있는 수필이다.

당선자에게 큰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아쉽게 탈락한 응모자들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함께 다음 기회의 분발을 기대한다.

 

- 본심 심사위원 : 김종회(문학평론가)_글, 장석남(시인)
예심위원 : 이승예 박희연 김태호

 

▶2025년 상상인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작

  

삼봉산(三峯山)

 

‘삼봉산’은 거실의 장식장 가운데 칸에 있던 수석 이름이다. 한탄강이 고향인 삼봉산은 수석이 취미셨던 아버지의 유품이다. 컴퓨터 키보드보다 작은 크기에 높이도 나지막한, 어정쩡한 회색의 매끄러운 이 돌은 움푹움푹 팬 곳이 많은 세 개의 봉우리를 갖고 있었다.

 

화려한 자개장이 유행이었던 무렵, 아버지는 한탄강 변에서 돌을 골라 집으로 가져오셨다. 점점 모아온 돌들이 쌓여 갔다. 집안에 뭔가 놓을 만한 곳은 이미 모두 돌이 차지했고, 계단도 모든 칸마다 오른쪽 모퉁이에는 돌이 자리 잡고 있어서 오르내릴 때 조심해야 했다. 안 그러면 아버지의 돌들이 도미노처럼 층계 아래로 굴러떨어질 테니까. 여러 종류의 돌을 설명해 주셨는데 그중에서 구멍이 있는 건 ‘관통석貫通石’, 까만 것은 ‘오석烏石’이라고 부르셨던 것만 기억난다. 아버지는 돌 받침이 될 좌대도 직접 만드셨다. 돌의 모양에 맞춰 나무를 깎고 칠해서 말리는 작업을 정성껏 하셨다. 작은 관통석들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머니는 거실 곳곳 매달 수 있는 모든 곳에 관통석을 달아 놓으셨다. 거실 탁자는 절구통 위에 수레바퀴를 눕혀놓고 그 위에 유리를 얹은 것이었는데, 바큇살마다 관통석을 주렁주렁 매다셨다. 그 많은 돌 중에서 부모님이 가장 아끼셨던 돌은 커다란 오석이었는데, 좌우로 긴 몸체 가운데 위로 솟아 있는 부분이 목을 길게 뺀 사람 같았다. 아버지는 그 모습이 소녀 얼굴의 옆모습 같다고 하셨다. 우리는 이 돌을 식탁 옆 창가에 두었다. 아버지의 이 수석 취미는 건강이 안 좋아지시면서 멈추었고, 간혹 돌을 달라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부모님의 집을 정리했을 때, 집에 돌은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좌대도 없는 그 돌을 내가 사는 곳으로 가져왔다. 거실 장 가운데 칸에 회 연두색 천을 깔고 그 돌을 올려놓고 ‘삼봉산’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나는 달리는 까만 토끼 문양이 있는 하얀 에코백에 삼봉산을 넣었다. 여기저기서 받은 그 많은 에코백 중에서 삼봉산의 마지막을 같이할, 삼봉산의 관이 될 가방을 나는 신중하게 골랐다. 달리고 있는 까만 토끼는 좁은 장식장에서 벗어나 원래 삼봉산이 있었던 넓은 자연으로 힘차게 나아가라는 의미를 담기에 좋다고 생각했다. 지독한 자기합리화이긴 했다. 돌이 어떻게 힘차게 나아갈 수 있나. 그래도 아버지의 유품과 같이하는 마지막 의식 하나하나에 나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삼봉산과 9년을 함께 살았지만, 이번 이삿짐에는 넣을 수 없었다.

아침 일곱 시. 창밖으로 보였던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있었는데, 정작 나가보니 우산 쓸 날씨는 아니었다. 장화까지 신고 나온 내 모습이 조금 우스웠다. 집 주변은 21세기에 만들어진 계획도시답게 조경이 잘 되어 있었다. 그리고 6월은 이곳 화단의 화초들이 무성할 때 어떤 모습일지 살펴보기에 좋은 시기였다. 천천히 걸으며 나무와 풀들, 땅의 생긴 모습, 그리고 사람의 손을 많이 타는 곳인지 등등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평소에 항상 지나다니던 출퇴근길이었는데, 이런 눈으로 바라보니 전혀 다르게 보였다. 마땅한 곳을 못 찾아 헤매던 차에 아파트와 초등학교 사이, 관리주체가 아파트인지 시청인지 알 수 없는 경계 부분에서 삼봉산이 들어앉을 자리를 찾아냈다. 나무와 풀은 많지만, 돌은 전혀 없는 다른 화단들과는 달리, 이곳은 나름 작은 이상향이라도 만들어보려고 했던 건지 약간 움푹한 공간에 주먹 크기의 반질반질한 돌들이 깔려 있고, 수박보다 큰 아홉 개의 현무암이 마치 섬처럼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었다. 물을 채우려고 만들었던 공간 같은데 한 번도 물을 채운 적 없는 듯, 깔린 돌 사이로 풀들이 무성히 자라나 있었다. 낮은 관목 울타리 뒤쪽 한 발짝 떨어진 곳에 썩 잘생긴, 아니 조금만 더 자라면 잘 생겨 질 소나무 한 그루도 꽤 믿음직했다. 잡초와 적당히 뒤섞인 잔디를 보니 돌 하나쯤 더 생겼다고 까탈스럽게 굴 관리자도 없을 듯했다. 나는 명당을 찾는 심정으로 이곳의 어느 곳이 삼봉산이 들어앉을 자리인지 숨을 죽이고 살펴보았다. 평평하고, 놓여 진 위치에서 이상향에 어울리는 의미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찾은 곳은 소나무에서 북쪽으로 뻗은 가지 아래에 있는 땅으로, 관목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곳이었다. 그 앞에 움푹 들어간 바닥은 둥근 돌들이 박혀 있었는데 마치 작은 연못 같았다. 관목을 덮고 내려온 담쟁이넝쿨 한줄기가 땅에 닿아 마치 비석처럼 위치표시를 해주었다. 아홉 개 현무암에서 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이곳은 좁지만 높고 평평해서 마치 검은 장수들을 아우르는 왕좌가 들어설 자리로 보였다. 사실 왕좌는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봐야 하겠지만, 이곳은 반대였다. 그래서 나는 다른 의미를 찾았다. 왕좌는 아버지에게 바치고, 이 돌은 남쪽 불기운을 막아주는 수호장의 역할을 하는 걸로. 마치 서울의 관악산처럼, 오방신五方神 중 주작朱雀처럼 말이다.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삼봉산을 꺼냈다. 내려놓으며 숨을 멈추고, 어느 곳이 바로 그 위치인지 신중하게 살폈다. 그림을 다 그리고 마지막 낙관 지점을 찾아 붉은 인주를 묻힌 인장을 종이에 대는 순간처럼.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음에 드는 위치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삿짐을 싸며 흘깃흘깃 장식장을 바라봤다. 빈칸이, 자꾸 눈에 밟히고 울컥해졌다. 옛사람들이 모든 것들에 그렇게 이름을 지어 붙이고 많은 의미를 부여했던 건 그저 구별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와 자와 명과 더불어 관계에 따라 부르는 호칭도 다양한 ‘사람’처럼 문에도, 방에도, 집에도, 모든 사물에 의미를 가득 담은 이름을 붙였던 이유를 생각해 봤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그것에 대한 기억조차 다 사라지는 허무함이 바탕인 삶 속에서 찰나지만 존재하는 것에 이름을 지어서 의미를 부여하고, 마땅한 위치를 찾아 자리 잡길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문득 다시 삼봉산을 집으로 가져오고 싶다가도, 어차피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갈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접는다. 대신, 삼봉산 이야기를 쓴다. 이야기는 아이에게 남겨줄 수 있고, 알 수 없지만 가지고 갈 수도 있지 않을까. 나중에 아버지를 만나면 궁금해하실 수 있으니 말이다.

 

▶ 당선 소감

 

상상인의 당선 소식은 기쁨과 놀라움, 감사의 마음과 함께 어색함으로 제게 복잡하게 다가왔습니다. 당선을 축하하는 가족과 지인들이 제 이름 뒤에 ‘작가’라는 호칭을 붙여 불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호칭은 이제 시작인 저에게 과분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는 시각예술 분야의 예술가를 의미하는 단어로만 사용했었기 때문입니다.

 

미술계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한 발짝 떨어져 경험한 ‘작가’라는 호칭은 그 무게도 색깔도 제각각이었지만,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끌어당길 만큼 무겁고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이 단어의 원류인 문학계도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무게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계속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이제는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가 ‘마당숲’이었습니다. 마당숲을 쓰면서 시작된 아버지와의 추억은 ‘삼봉산’으로 이어졌습니다. 두 개의 수필 모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했으니, 이 상은 저의 선친께 바치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계속 글을 쓰라는 무거운 격려만 받겠습니다.

 

글을 쓸 수 있도록 응원해 준 가족, 그리고 글쓰기 모임의 이중세 선생님과 동료들, 신인들을 위해 공모전이라는 마당을 펼쳐주신 상상인과 심사를 해주신 김종회 선생님 장석남 선생님께 깊이 고개 숙여 존경과 기쁨의 마음을 표합니다. 고맙습니다.​




왕신연(王信然)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협동과정 미술교육 박사과정 수료

前 국립현대미술관(2013~2022), 前대통령비서실 파견(2017~2020), 前문화체육관광부(2022~2025)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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