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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상상인작품상 _ 권갑점

2026.01.31


제4회 상상인작품상에 권갑점 시인의 「건장마」가 선정됐다. 상상인작품상은 계간 '상상인' 게재 작품의 문학성을 높이고 시인들의 사기 진작에 기여하기 위해 제정됐다. 제4회 상상인작품상은 2025년 봄호~겨울호까지 수록된 작품을 심사 대상으로 삼았다.
 

권갑점 시인은 2005년 시집 '천년의 숲'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고 중편소설집 '히말라야 로터스'(제5회 항공문학상 우수상), 산문집 '한숨인 줄 알았더니 꽃숨이더라'(협성문화재단 뉴-북 프로젝트 선정 및 우수도서 선정), '지리산을 쓰다', '인도 또 인도'(함양군, 지역문화활력촉진사업 선정) 등이 있다. 지리산 지역문학상, 제4회 상상인작품상을 수상하였다. 권갑점 시인의 「건장마」 작품이 빛나는 지점은 연민과 연대의 감각이 관념으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데 있으며 시는 어머니의 고통을 불쌍함의 정조로 소비하지 않고, 그 고통이 생성해 낸 세계의 결을 보여준다. 비를 피해 들어간 동굴에서 “뱀과 황소의 환영”이 일렁이는 대목은 개인사의 내면으로만 환원될 수 없는 생의 불안과 공포를 상징적으로 확장하며, 그 확장 속에서도 시의 문장은 끝내 생활의 구체성을 놓치지 않았다고 심사평을 했다. 올해 심사는 황정산, 여성민, 오늘 세 분이 맡았다. 상상인작품상의 상금은 300만원이며 시상식은 2026년 3월 28일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오후 5시 30분에 열린다.

 

 

제4회 상상인작품상 수상작

 

건장마

 

 

어머니의 건장마가 길었던 것은 그리움 때문이었다

신혼의 장마철에 군에 간 신랑이 보내온 편지 속에는 바삭한 달맞이꽃잎이 들어있었다 여름을 뭉개고 앉아 섬부골 콩밭을 매다가 흘린 어머니의 푸른 땀

 

복숭아나무의 아랫배가 불러오는 계절에 어머니는 배를 곯았다

소나기를 둘러업은 여름이 불어오던 날 새는 바람을 물고 날았다 뻐꾹새가 날아간 모퉁이를 지나 묵정밭으로 간 어머니, 허기증에 호미를 던지고 복숭아나무 아래로 갔다 자식을 잉태한 어머니는 다섯 손가락을 쫙 펴고 단물을 핥았다 벌레 든 복숭아를 먹고 배가 아팠던 어머니의 고단한 그늘에 밭고랑을 뭉개며 몰려들었던 세찬 비

 

그해는 유독 소나기가 자주 내렸다

무명 보자기에 덮인 듯 산골짝은 세상의 기척이라곤 없이 웅크리고 있었다 자주 동굴을 열었던 꿈속처럼 비를 피하러 들어간 곳에 뱀과 황소의 환영이 일렁였다 어머니는 꿈속의 꿈을 헤매느라 오랫동안 동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엄마는 엄마도 없이 건장마 그늘에서 몸을 풀었다

칡꽃 향기를 따라 물안개의 뒤를 밟던 아침처럼 신랑이 돌아왔고 복숭아 뺨을 베어 물고 단물든 아이가 걸어왔다 최초의 기억은 동쪽 창에 번지던 웃음소리, 유년을 얼비추던 햇살이었다

달맞이꽃 무더기로 피어나던 어머니의 여름은 건장마의 그늘에서 눈물도 꽃이 되었다

 

 

수상 소감

 

제 안에는 오래도록 그치지 않는 어머니의 장마가 있습니다. 하늘은 잠시 갰다가 이내 흐려졌고 그 기억은 젖은 상태로 눅눅하게 남아 있습니다. 마른하늘 아래에서도 젖어 있던 오랜 기억의 시간들이 시의 문장을 밀어주었습니다.

 

어머니의 계절은 언제나 몸으로 지나가 버린 시간이었습니다. 신혼의 여름은 더욱 그러합니다. 밭을 매고, 그늘에서 숨을 고르며, 기다림을 일상의 일과처럼 받아들이던 시간들. 그 시간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고, 스스로를 설명하지도 않았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침묵이 머물렀던 자리를 오래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장마」 시가 당선되었다는 놀라움은, 개인의 기억이 사적인 영역을 넘어 타인의 공감대로 건너갈 수 있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한 사람의 삶에서 건져 올린 경험과 감각, 시간 속 풍경이 시라는 형식을 통해 뜻밖의 시간으로 타인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습니다. 시를 쓰는 일의 의미를 다시금 깊게 돌아보게 합니다.

 

작품을 읽어 주시고 귀한 박수를 보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앞으로 더 오래, 더 깊이, 세상을 향해 묻고 더 신중하게 써야 한다는 격려로 받아들이며 나아가겠습니다.

건장마 계절에도 반짝이는 햇살처럼 따뜻한 온기 있는 글을 향해 정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권갑점

경남 함양 출생

시집 '천년의 숲'

중편소설집 '히말라야 로터스'(제5회 항공문학상 우수상)

산문집 '한숨인 줄 알았더니 꽃숨이더라'(협성문화재단 뉴-북 프로젝트 선정 및 우수도서 선정) '지리산을 쓰다' '인도 또 인도'(함양군, 지역문화활력촉진사업 선정) '상림 별곡' '내 안의 봄날'

지리산 지역문학상, 전국농협가족 문예대전 시부문 우수상 수필부문 최우수상 수상

 

 

심사평

상상인 작품상은 한 해 동안 계간 『상상인』에 발표된 작품들 가운데 당대의 감각과 언어 그리고 시적 사유의 성취가 두드러진 한 편을 선정해 수여하는 상이다. 이번 본심에는 「그리운 중력」, 「건장마」, 「착지자세」, 「조우」, 「멜랑콜리아」, 「비문들」, 「킨포크」 등 모두 7편이 올라, 각 작품이 구축한 미학적 지향과 언어적 밀도를 놓고 면밀한 검토를 거쳤다. 논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건장마」를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권갑점의 「건장마」는 어머니의 삶을 호출하면서도 그것을 사적인 회고나 혈연적 서정에 가두지 않는다. 이 시에서 ‘어머니’는 특정 개인으로서의 어머니이되, 동시에 이 땅에서 여성들이 감내해 온 생의 조건을 대표하는 인물로 확장된다. 작품은 “어머니의 건장마가 길었던 것은 그리움 때문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장마라는 기상학적 시간 위에 그리움과 결핍, 노동과 임신, 생계와 돌봄의 층위를 겹겹이 포개 놓는다. 군에 간 신랑의 편지 속 “바삭한 달맞이꽃잎”, 섬부골 콩밭에서 흘린 “푸른 땀”, 복숭아나무 아래에서의 허기와 단물, 밭고랑을 뭉개며 몰려드는 “세찬 비” 같은 장면들은 사연을 설명하지 않고도 생의 고단함과 절박함을 촉각적으로 전달한다. 이처럼 감정은 진술되지 않고 감각으로 현현하며, 비는 눈물의 은유에 머물지 않고 삶을 통과한 시간의 압력으로 작동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빛나는 지점은 연민과 연대의 감각이 관념으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는 어머니의 고통을 불쌍함의 정조로 소비하지 않고, 그 고통이 생성해 낸 세계의 결을 보여준다. 비를 피해 들어간 동굴에서 “뱀과 황소의 환영”이 일렁이는 대목은 개인사의 내면으로만 환원될 수 없는 생의 불안과 공포를 상징적으로 확장하며, 그 확장 속에서도 시의 문장은 끝내 생활의 구체성을 놓치지 않는다. 또한, 결말에서 “달맞이꽃 무더기로 피어나던 어머니의 여름은/건장마의 그늘에서 눈물도 꽃이 되었다”라는 구절은 상처를 미화하거나 고난을 훈장처럼 치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혹한 조건 속에서도 생이 스스로의 형상과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생명의 역설을 증언한다. 농밀한 정서를 감각적 언어로 치열하게 형상화한 점 그리고 개인사를 넘어 여성들의 삶에 대한 연민과 연대를 작품 내부의 장면과 리듬으로 구현한 점에서 「건장마」는 이번 본심작들 가운데 가장 뚜렷한 성취를 보여주었다.

다른 후보작들 또한 구상이 탄탄한 작품들로 각기 뚜렷한 시적 성과를 보여주었다. 이번 본심은 동시대 시가 감각과 사유, 사회적 자각과 언어적 실험 사이에서 어떤 긴장과 균형을 모색하고 있는지 선명하게 확인하게 한 자리였다. 그 가운데 「건장마」는 한 어머니의 ‘계절’로부터 여성들의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견디며 생성되는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가장 설득력 있게 증언했다. 수상작의 성취가 독자들에게도 오래 남아,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그늘과 빛을 함께 사유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황정산(글), 여성민, 오 늘



상식 _ 2026년 3월 28일(토) 오후 5시 30분

장 소 _ 대학로 [예술가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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