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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최명선 시집 <우리가 빈 곳이라 부르는 곳> -도서출판 상상인-

2025.09.16

 




최명선 시집 우리가 빈 곳이라 부르는 곳


상상인 시인선 082 | 2025년 9월 8일 발간 | 정가 12,000원 | 128*205 | 130쪽 

ISBN 979-11-7490-006-7(03810)
도서출판 상상인 | 등록번호 572-96-00959 | 등록일자 2019년 6월 25일 
(06621)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 74길 29, 904호 
Tel. 02 747 1367, 010 7371 1871 |Fax. 02 747 1877 | E-mail. ssaangin@hanmail.net

* 이 도서는 2025년 강원특별자치도, 강원문화재단 후원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책 소개]

최명선의 시집 『우리가 빈 곳이라 부르는 곳』을 읽으면 ‘비움의 미학’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이 시집에서 ‘비움’은 결핍의 동의어가 아니라, 타자를 맞아들이는 가장 유효한 윤리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에서 ‘빈 곳’은 회피나 무위의 장소가 아니라, 나를 내려놓음으로써 관계가 발생하는 공간이다. 이 시집의 시어들은 과장되지 않고, 사물들은 자신을 화려한 이미지로 드러내는 대신 자리를 내어준다. 그 결과 독자는 견디기, 비우기 그리고 타자와의 공존을 시인의 삶의 방식이자 이 시집의 미학으로 이해하게 된다.  

맨 앞의 시 「말랑한 물의 집」은 시집 전반의 문법을 가장 선명하게 제시한다. “제 몸 헐어 비를 품는/웅덩이”는 자신을 깎아 그릇이 되는 존재다. ‘필요한 만큼만 채우고 흘려보내는’ 그 습성은 축적이 아니라 순환의 경제를, 소유가 아니라 통과의 윤리를 가르친다. 기꺼이 비우는 그릇이야말로 타자를 맞아들이는 힘을 갖는다. 견딤의 의미는 표제작이기도 한 「겨울 소묘」에서 계절의 얼굴을 빌려 구현된다. “잡초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묶은 채/한 생을 닫는 들판의 겨울”은 생의 막바지까지도 서로를 연결하는 끈끈한 연대를 보여준다. 「무던해진 쓸쓸함으로」는 이러한 변주를 내면의 결로 들여다본다. ‘잇거나 잊거나’의 선택 앞에서 시는 “잊는 것이 잇는 것보다 쉽다”는 일종의 냉정한 결론을 내리면서도, 그 쉬움이 남기는 공허를 응시한다. 
비우기는 곧 ‘나를 내려놓기’로 이어진다. 「너와집 한 채」에서 화자는 “뼛속을 비우고 중력을 늘인” 어떤 가벼움을 ‘신의 배려’라고 말한다. 무게를 덜어내는 것이 떠남이 아니라, 더 많이 수용하기 위한 준비임을 이 시는 일러준다. “비우고 접어 나 한 뼘 좁히면/풀꽃 몇 포기 더 넉넉해질 터”, 이 문장에 나의 공간을 한 뼘 줄여 타자의 생장을 허락하는, 이 시집의 윤리적 핵심이 간결하게 응축되어 있다. 내 몫을 스스로 덜어 타자에게 내어주기. 이 ‘내려놓기’는 희생의 수사로 과장되지 않고, 조용한 생활의 습관으로 제시된다.
한편 시집 곳곳에서 발견되는 일상적 사물들은 비움을 통해 다른 시간으로 부화한다. 「부화를 위하여」의 조약돌은 ‘영락없는 새알’이 되고, “나 없이도 살아온/나 없어도 살아갈” 사물의 자립을 증언한다. 화자는 결국 돌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소유의 중단이야말로 관계의 시작이라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윤리를 다시 한번 이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풍선이 글쎄」는 ‘넘치면 빼라, 과하면 덜어라’라는 풍선의 훈계를 통해 과잉의 시대에 필요한 생활철학을 가볍고도 정확하게 전달한다. 과포화의 순간이야말로 파열의 순간임을, 그 파열 이후에야 진실이 시작됨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비움의 미학은 「무정처가 정처다」에서 사유의 형태로 굳어진다. 머무를 자리가 없어 보이는 시대에, 시는 ‘없음’을 ‘있음’으로 뒤집는다. 이 시에서 무정처는 방황의 영속이 아니라, 관계를 재배치하기 위한 임시의 거점이다. 최명선 시인에게 빈 곳은 도피처가 아니라, 돌아갈 수 있도록 체력을 비축하는 쉼터인 셈이다.

시집 『우리가 빈 곳이라 부르는 곳』은 ‘덜어냄’과 ‘견딤’을 삶의 두 축으로 삼아, 공존의 감각을 생활 언어로 번역해 낸 시집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우리는 일상의 번잡함을 나도 모르게 무심히 비우고 있을 것이다. 더 넉넉해진 풀꽃 몇 포기를 위해서. 그리고 그 풀꽃 사이에 다른 존재가 마음 놓고 쉬어가도록 우리의 작은 빈 곳을 오래 지켜보게 될 것이다.

[시인의 말]

하루의 저녁은 생의 늦가을


밀레의 저녁 종을 마음에 심어
두 손 모을 수 있게 하시니 고맙습니다

지는 일 없으면 피는 일도 없겠지요

곳곳에 밴 초록 자국 아직 분분하지만
갈빛도 희망

살뜰하게 지피도록 하겠습니다


2025년 가을
최명선

 

[저자 약력]

최명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4년 월간 󰡔문학세계󰡕 등단
시집 『기억, 그 따뜻하고 쓰린』 『말랑한 경문』 『환승의 이중 구조』 『우리가 빈 곳이라 부르는 곳』
강원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2016, 2021, 2025)
속초 교육문화관 <일상을 여는 글쓰기> 강사
한국문인협회 속초지부장

mscs54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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